| 일요일 점심시간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아내가 남편에게 염색 좀 하라고 조르고 있다. 보아하니 내 또래 중년의 부부이다. 남편은 안하겠다며 아내 곁을 빙빙 겉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내 아내도 염색을 하라고 조른 게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아내가 서너 번 해주었는데, 머릿속이 송시러워(근질거려) 딱 죽을맛이었다. 흰머리가 많긴 하나 앞으론 안할 생각인데, 주변에서 성화가 대단하다. 친구들 이야기는 흰머리투성이라 직장에서 찍히기 십상이라는 것이고, 아내의 이야기는 시장에 가면 세컨드(재취)로 보이고 친구들이 놀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모르쇠로 일관할 생각이다.
어쨌든 ‘염색’이라는 말뜸(화두)을 계기로 아내라는 존재의 잔소리에 대해 한 말씀 올려야겠다. 그 후폭풍이 얼마나 무서울지 두렵긴 하지만 ‘곧 죽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 잔소리가 100%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세상의 아내들은 왜 쉴새없이 남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간섭을 하고 통제를 하려 드는 걸까. 정말 남편을 ‘큰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걸까.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골라주는 것은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내지 마라. 아무 데서나 방귀 뿅뿅 뀌지 마라. 왜 그렇게 콧구멍을 후비는거냐. 추접스러워 같이 못다니겠다. 영화관에 가면 졸지 말라고 툭하면 찝어까기도 한다. 머리 비듬 많다고 잔소리, 아이들 신경 좀 쓰라고 꽁알꽁알, 친정식구들에 대해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협박을 일삼는가하면, 남편들의 최대의 기호품인 술에 대해선 아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술에 대해서만큼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이런 것이야 다 참을 수 있고, 마땅히 참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까발려 보자. 명절 두 번, 어르신 생신 등 고향에 가는 게 1년이라야 고작 서너 번이다. 고향은 탯자리인지라 우리들의 자궁에 다름아닌가.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형제자매들이 다 모이니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 모양이다. 시골에서만큼은 부모님 빼놓고 아무에게도 어떤 ‘잔소리’도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나만의 ‘현상’일까. 그런데, 문제는 아내들의 ‘극성’이 이때 더욱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양복바지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갈아입으면 된다. 그러나 “여보옹, 이빨 닦아잉”이다. 평소엔 ‘여보’라는 호칭도 별로 사용치 않은 것같으면, 왜 고향집에만 오면 ‘여보’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것일까. 이것은 나의 사랑스런 아내만의 독특한 애정표현은 아닌 것같다. 언젠가 몇 몇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고향집에서의 일반적인 아내들이 행태(언행)’가 화제에 올랐는데, 하나같이 불만사항이 위에 말씀한 사항임을 알고 서로 깜짝 놀랐다. 절대로 나의 아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형수들도 형님들을 닦달하기에 바쁘다. 아이들도 싫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인데, 여기저기서 내 아들, 조카들 이름 부르기에 바쁘다. 참 묘한 공통사항이다.
이빨, 하루저녁 안닦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을 뭐 그렇게 티를 내면서 집안식구들이 다 들으란 듯이 채근을 해대는 것일까? 누군가 ‘아마 그 속내는 당신(우리 아이들)은 시부모도 손댈 수 없는 내 것이라는 턱없는 소유감의 과시때문이 아니겠냐’고 하여 무릎을 치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마당에 ‘싫다’ ‘나중에 닦을께’라고 말하면 진짜 난리가 난다. 그런데 남편들은 왜 그렇게 그 ‘좋은 잔소리’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마도 자기가 태어나 자란 집에서 마음이 모처럼 릴랙스한데, 아내라는 여자의 자질구레한 생활상의 잔소리가 귀에 너무 거슬린 때문일 것이다. 그저 편하게만 있고 싶은데, 그까짓 양복바지 좀 구겨지면 어때? 모처럼 자기가 태어난 방에서 늦잠 좀 자면 어때? 엄마도 아무 말 않는데, 당신이 왜 그래? 그런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닐까? 말하자면 생래적인 반발심? 그러다보니 하루나 이틀밤 자고 올라올 뿐인데, 신경전이 보통이 아니다. 오고가는 눈빛에 냉기가 흐르기도 하고, 서울 가서 보자는 은근한 협박의 눈길도 엿보인다. 하여, 올라오는 길은 대부분 싸움이 비화될 것을 염려하여 침묵하는 게 다반사이다. 자칫하면 죽는다.
참 묘한 존재이다. 아내와 남편, 부부라는 것. 어쩔 때는 너무 편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을 때가 있다. 그거야 피장파장일 것이다. 남편을 애처럼 다루려는 아내의 ‘모성’(母性)도 좋다. 마마보이처럼 아내만 믿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아내를 의지하면 되는 일인데, 문제는 그래도 ‘수컷의 자존심’을 살리려는 것인지 한두 번 꼭 ‘반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골집에서만큼은 유난히 티를 내지 않고 위생을 앞세워 ‘일어나라’ ‘옷 벗어라’ ‘이빨 닦아라’ 는 등의 잔소리는 안했으면 좋겠다. 특별한 유감없이 결혼생활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견디기 힘든 잔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여보, 나는 영원히 당신 것이니 시댁 식구들 앞에서 유별나게 티내지 않아도 돼. 고향집에서만큼은 나 좀 봐줘라잉. 무엇을 하든지 그냥 냅뒀으면 좋겠어잉, 하루정도는 이빨 안닦아도 큰일 안나. 옆에서 아내가 "앞으로 무슨 글을 쓰든 당신 자유지만, 내 프라이버시를 한번도 더 건들였다간 죽는줄 알아잉"하며 종주먹을 들이댄다. 솔직히 내가 뭐 아내의 프라이버시(우리는 프라이시버라고 부른다)를 건든 적 없는 것같은데, 아무래도 여자들은 되게 민감하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끔씩은 우리집 이야기를 들어 풀어가기도 하지만, 그것도 몇 번 안되고, 그것도 못봐주냐. 쫀쫀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