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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퀴즈! 대한민국" 출연 (2008.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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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일기 53]아내여, 미안하다. 사랑한다! | IP : 글 작성 시각 : 2005.01.05 19:17:11 |
| | 아내가 새해 첫 출근을 하다. 출근이 몇 년만일까. 대학 졸업후 동부그룹에 한 2년 다니다 아이를 갖고 그만 둔 후 처음이니까 18년만인가. 갑자기 철산역에서 지하철 7호선이 불통이라는 급한 전화다.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나가 합정동까지 출근을 시켜주고 돌아오는 길, 마음은 똥속이자 두엄자리다. 아, 이게 천하의 내가 무슨 꼴인가. 정초부터. 이거. 이러다 진짜 살림하는 전업주부 되는 거 아냐. 집에 돌아와 애꿎은 아이들에게 성화를 부렸다.
그러다가 아내를,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지금 그 친구는 얼마나 마음이 심란할 것인가. 자기가 오랫동안 원하던 곳에 터를 잡았지만, 우리집 상황이 이런 데 출근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죽을맛일까.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내 몫을 제대로 하는 것만이 이 사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래저래 꼬이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니므로 짜증만 늘어난 연말연초 우리집 휴가풍경이었다.
안되겠다. 오후에는 기특한 일 한번 해야겠다. 여동생 3명의 대표로 수원에 사는 동갑내기 매제(초등학교 교사)가 올라왔다. 둘이 아내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커다란 화분 두 개를 선물했다. 여직원들에게 5천원짜리 꽃뭉치를 하나씩 안겨드리고 돌아오는 길은 제법 흐뭇했다. 힘을 내라! 아내여! 내가 세상을 엉터리로 살지 않은 이상, 일은 잘 풀릴 것을 믿으며 애써 힘을 내본다. 어디서 본 구절이 생각났다. 나이 오십까지 사람들을 진실되게 사귀며 인생을 성실하게 살았다면 노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럴까. 나를 믿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까. 올바로 살아왔을까.
12월 16일. 결혼한 지 만20년이 되는 날이었다. 20주년,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이다. 따로따로 태어나 어느날 우연히 이성으로 사랑을 하고 한 세상 같이 잘 살아보자며 식을 올린 지 어언 20년. 두 아이가 우리로 인해 태어나고 성년이 된 나이. 나도 내일이면 지천명이다. 아내도 이제 40대 중반에 턱을 올려놓은 나이. 어느 날부턴가 가까운 곳의 글자가 안보인다며 돋보기를 찾는 나이. 울고 웃은 그 세월. 애니버서리(anniversary) 챙기는 것은 늘 남편의 몫인가. 할 수 없다. 슈퍼에서 처녀때 아내가 좋아하던 마주앙 모젤 한 병을 사고 카드에다 궁시렁궁시렁 몇 마디 쓴 후 아내를 기다렸다. 귀가 10시. 아이들은 자그마한 케이크를 준비했구나. 기특한 일. 한밤 세리머니를 하면서 새삼 우리 둘이 같이 한 희로애락 20년세월이 생각났다.
우리는 행복했는가. 앞으로나마 행복할 수 있겠는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수많은 성격차이를 이제껏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요즘 젊은 친구들의 '불쑥 이혼'꼴이 안난다는 보장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소유(所有)하려고만 했을까. '다름'과 '틀림'에 대해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생활에서는 늘 헷갈리고 혼동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였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무엇인가. 別이란 차별의 별이 아니고 다름의 별이며 분별의 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는가. 각각의 몫이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가. 그러나 이제는 철 들었는가. 분명히 앞으론 다른 것은 다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전혀 자신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헷갈린 채 말싸움을 할 것이고, 시도 때도 없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 할 것이다. 무슨 뾰족한 방법은 없는가.
연예인들은 불꽃같은 사랑이, 화려한 결혼생활이 깨지면 이렇게들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성격 차이로 어쩔 수 없다" 성격 차이? 살아가면 갈수록 느끼는 성격차이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골출신인 데도 도시취향적(urbanbtic)인 사고방식으로 중무장된 아내하고 생긴대로 놀 수 밖에 없는 토종된장(ruraltic) 나하고는 애초부터 도저히 건넬 수 없는 다리가 있었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친구가 도시락까지 싸고 다니며 우리들의 결혼을 막았던 이유를. 그래도 용케 버티고 살아온 것은 두 사람의 밑바탕엔 착한 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최종 극한으로까지 치달으면 안된다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고착된 무언의 강박관념이 있지 않았을까.
참으로 숱하게 싸워 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백번, 천번, 그 얼마나 무용한 짓거리였던가. 무수한 소모전, 그 싸움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지혜가 그리도 없었단 말인가. 체질이 틀린 탓에 싸움은 갈수록 격화되어 가기만 했다. 하지만 결단코 손찌검을 한 적은 없다. 단지 깝깝한 탓에 고함과 내 가슴을 두들기거나 줄담배에 병나팔을 불어대는 못난 특징이 있었다. 그래도 용했다. 마치 죽일 듯이, 벌레 보듯이 경멸하다가도, 잠잘 때는 손을 잡고 자다니. 간지럼을 먹여서라도 나는 팔베개를 해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것이 안찢어지게 한 일등공신이자 비결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장모님 앞에서도 고성은 예사였다. 그런 우리들을 장모님은 빙긋이 웃으며 "사랑싸움"이라고 일축했었다. 그 말이 맞긴 맞았는가. 이렇게 질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나는 아내와 아이들과 무슨 일이든 같이 하고 싶었다. 의당 가족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주말엔 같이 놀러 가야 하는데, 이것부터 180도 틀려 버린다. 일요일 등산도 가고 놀러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번도 아내나 아이들은 나의 이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가려면 혼자 가라며 내처 잠이다. 눈 부비는 시간, 빨라야 오전 10시. 나는 완벽한 새벽형 인간이다. 아무리 술을 먹고 늦게 자도 6시면 일어나는 이상체질이다. 혼자 노는 것도 한도가 있지. 하여 공동묘지론을 들고 나온다. 이게 무슨 집구석이냐고? 공동묘지에 다름없다고? 이 침묵을 어떻게 하라냐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밥 해놓고 무한정 기다려야 하냐고? 해도 너무 한다고?
그래도 막무가내다. 일요일이라고, 방학이라고 유원지나 산에 몇 번이나 갔을까. 애시당초 이럴 줄 알았으면 등산이나 낚시를 즐겼을 터인데, 그러지 못했다. 이것도 내 잘못이다. 산에 가면 삼삼오오 아니면 가족끼리 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얼마나 부럽던지. 악착같이 우겨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게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아내는 아이들 편에 서서 역성까지 든다. 내버려두라고. 왜 싫은 사람을 귀찮게 하느냐고.
속으로 나는 울부짖는다. 에이라, 이 밥통들아.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무슨 떼짐 졌다고 이래 자빠져 있냐. 일등 프로농사꾼인 아버지는 그랬다. 해장에 벌써 큰일 하나 해치우고 그야말로 아침에 대문을 열어제치며 들어선다. 대뜸 아랫방 방문을 열고 자고 있는 우리 형제들을 채근한다. 지금도 자고 있냐고? 한번 해서 안되니까 간짓대(빨랫줄을 받히는 긴 대나무막대)를 방안으로 밀어넣고 휘젓는다. 얼마나 살벌한 풍경인가. 그렇게 자랐으니 늦잠이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여동생 3명도 모두 새벽형 인간이다.
이 차이, 얼마나 심각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말하기는 쉽다. 내버려두라고. 너는 너대로 놀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가. 부부관계가 어찌 사소한 일이랴. 잠시간대가 각자 다르다보니 만족할만한 결과 나오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영화를 봐도 돈 아끼려 조조프로를 보고 싶은데, 엄청 어려운 일이다. 신혼때는 그랬다. 혼자 목욕갔다, 밥 해놓고 청소를 다 해놓아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래도 예뼜다. 그때는. 지금은 아니다. 미워 죽겠다. 백수라고 6개월을 노는 데도 나는 눈치도 없이 아내가 미웁다. 요즘사 조금 눈치를 본다. 저도 나이를 먹었나. 출근을 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나. 그것도 좀 두고 볼 일이다. 아이들 학교 다닐 때는 조금 다르다. 에미의 본능이 아이들 잘 멕이는 것이므로. 그게 인생의 목표였으므로. 허나 방학만 되면 만판이다. 아이들 밥 차려 멕이는 것은 내 몫이다. 이 말 들으면 아내는 조금 억울할 것이다. 나의 말에 왜 과장이 없겠는가. 야행성 인간인 아내의 각성이 요즘들어 눈부시다. 기대해 볼 판이다.
나는 어지간해서 아프지 않는다. 1년에 감기 한번 들까말까한 체질이다. 그러나 아내는 시도 때도 없이 몸살이다, 감기다, 아파싼다. 사랑이 식어서인지 아픈 아내가 성가시고 밉다. 아픈 당사자를 생각하면 이렇게 야박하게 말하면 안되는데. 너무 자주 아프고 누워 있으니 왜 안미웁겠는가. 어쩔 땐 약도 사다 주기 싫다. 나는 웬만해서는 추위를 타지 않는데 아내는 조금만 추워도 어쩔 줄 모른다. 오죽하면 얼음공주라며 놀리겠는가. 더블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도 아주 고통스런 일이다. 나는 윗통을 벗고도 거실이나 아무 데서 자도 끄덕없다. 춥다고 전기이불을 틀어대는 데 못견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아내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내를 사랑해서 일까. 잘 모르겠다.
나는 정이 많다. 눈물이 많다. 인간관계가 끈적끈적하다. 그러나 아내는 어지간하면 울지 않는다. 인간관계가 사무적일 정도로 쿨한 편이다. 꼭 전화를 직접 해서 정(情)을 확인해야 하냐고 핀잔이다. 그렇다고 아주 냉정한 사람이 아닌 줄은 나도 안다. 그래도 표현을 해야 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고 싶다. 그러나 아내는 좀처럼 그런 속된(?) 말을 하지 않는다. 내숭인가. 강한 편인가. 하여간 생활적으로 부딪치는 이런 갈등과 불평, 불만속에 우리는 늘 다툰다.
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졸장부의 쩨쩨함을 다 가지고 있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다. 그러나 아내는 제법 담대하고 겁이 없는 편이다. 무엇보다 훌륭한 미덕은 낙천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매사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아내는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는 거다. 사실 맞는 말이다.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부른다는 것이 정설로 굳혀진지 오래다. 그런데 나는 왜 늘 이렇게 부정적이고 조마조마하고 걱정쟁이가 됐을까.
집안 내력이다. 일찍 단명하여 손이 귀한 집, 할머니는 무조건 세상이 두 쪽나도 슬하자손(膝下子孫) 만세영(萬世榮) 무병장수(無病長壽)만을 마이산 천지탑에 빌고 빈 게 50년이었다. 그러니 후손이 어디 큰 인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돌아가신 할머니 탓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불경(不敬)이다. 그 덕분에 이렇게 건강한 체질을 타고 나지 않았을까.
이제사 조금씩 아내를 알아가고 있다. 이해해주고 싶다. 나와는 체질이나 성격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種)이라는 것을. 내 식으로 끌어당기면 당길수록 불행이 싹트고, 급기야 가정이 아작난다는 것을.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소유하려 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도 말했다. 부부는 단지 두 개의 기둥(column)일 뿐이라고.
늙어가는 아내의 잔주름을 보면서, 돋보기를 손에 쥐어주면서, 등을 긁어주면서 내가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는 것을. 다시는 그런 불행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결혼 20년만에 ‘작지만, 너무나 큰 진리‘를 깨달은 순간이다. 그러던 중 황지우라는 시인의 ‘늙어가는 아내에게’라는 시를 읽으며 내내 혀를 찼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문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낙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랩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너무 노(老)티나는 시라서 닭살이 돋는가. 천만에. 젊어 바람도 제법 피웠을 시인 서정주선생은 60평생을 넘게 산 70 넘은 조강지처와 잘 때 그랬다던가. 힘도 없어 방사(房事)는 못하고 아내의 불두덩이 음부(陰部)에 손을 가만히 올려놓고 잤다던가. 아름답도다. 대시인의 유치한 사랑이여!
나는 지금쯤 퇴근을 서두르고 있을 아내가 벌써부터 보고 싶다. 청국장을 끓여놓고 생강을 잘게 썰고 무를 삐져 무국을 끓이자. 비린 것이 있어야 하는데 몇 술이라도 뜨는데, 그래 갈치토막도 몇 개 굽자. 유행가 가사에도 있었다. “오늘밤 우리는 우우우우 사랑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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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by 알록달록 | 2007/01/17 21:37 | 백수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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